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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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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년 214일’의 무게 2022.09.18좋은비전교회
    ‘70년 214일’의 무게지난 9월 8일, 향년 96세로 별세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1952년, 25세의 나이에 즉위하여 이듬해인 1953년에 대관식을 거행한 이후, ‘70년 214일’ 이라는 영국 역사상 최장수 여왕의 자리를 지키며, 백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감당했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의 상징이었던 여왕은 자신을 낮추고 국민을 앞세우는 겸손의 리더십으로, 영국인들 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에서 과거 영국의 잔학성에 대한 비판의 쓴소리가 많이 나오는 걸 보면서, 세상을 떠난 한 군주의 일생을 두고 세간의 평가가 자못 엇갈리는 것도 느낍니다. 그녀의 생애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차치하고, 저는 미디어를 통해 영국 여왕의 장례식 뉴스를 보다가 ‘한 장면’에 저의 시선이 꽂혔습니다. 그 장면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관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향할 때였는데, 그 관 위에 여왕이 평생 감당해 온 왕관이 놓여 있었습니다.‍‍화면 속 왕관을 보는 순간,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남겼던 작품에서의 문장 하나가 생각났는데, 15세기경 끝없이 권력에 집착했던 ‘헨리 4세’를 꼬집기 위해 그의 희곡에서 했던 말이었습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셰익스피어가 말한 [왕관의 무게]란,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왕관이라는 물건의 무게가 아니라, 왕관을 쓰는 자에게 주어진 책임감의 무게, 그 자리와 위치에서 나오는 사명감의 무게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두 눈이 화면 속 자줏빛 왕관을 쫓아가다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무려 70년 214일 동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 왕관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왕관을 벗어 버리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을까?’ ‘왕관을 벗어버리고 싶었다면 언제 그랬을까?’,  ‘여왕은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나의 얕은 머리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70년 214일의 세월을 견딘 왕관의 무게… 그러나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 부여된 책임감과 사명감의 관점에서 어느 누구나 각자 견뎌야 할 무게가 있고, 그 무게는 어느 누구의 것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 한 역사적인 인물이 무거운 왕관을 남기고 떠난 자리에서, 저는 다시금 Sense of Calling, 하나님으로부터의 소명의식을 되새겨 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아 지금 여기에 제가 있음을 믿고, 그가 맡기신 사명의 무게도 끝까지 견디어 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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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5
    '비'와 '딸' 2022.09.11좋은비전교회
    ‘비’와 ‘딸’지난 금요일 저녁, 연일 100도를 넘나드는 폭염으로 지칠대로 지친 메마른 대지 위에 내린 비는 마치 추수하는 날의 얼음 냉수처럼 하나님의 기막힌 선물이었습니다. 그렇게 남가주에 귀한 비가 오는 날이면, 뭉게구름처럼 피어나는 딸과의 소중한 추억이 있습니다. 가족이 미국으로 오기 전, 둘째 지인이가 만 세 살때였습니다. 아빠를 닮아 비오는 날을 유난히 좋아했던 어린 딸은 비가 솔솔 내리던 어느 월요일 아침, 아빠의 손을 잡아당기면서 밖으로 나가자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딸을 노란색 비옷과 노란색 장화로 무장시키고, 세 살배기에겐 깊은 골짝 같은 빌라의 계단을 한참 걸어내려와 처마밑에서 노란색 우산을 펼치는 순간, 아빠의 눈에 지인이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노란 병아리가 되었습니다. 골목길을 내려가는데, 부슬부슬 내리던 빗방울이 어느새 바람을 동반한 굵은 빗줄기로 변해버려 세 살배기의 힘으로는 우산을 지탱할 수가 없었기에, 얼른 아빠가 딸아이의 우산을 잡아주려 했지만, 이 꼬마는 기어이 혼자서 자기 우산을 들겠다고 우기는 것이었습니다. “아빠가 안 도와줘도 나 혼자 할 수 있어요!”급기야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 할 수 없이 한 손으로는 내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딸아이 몰래 노란 우산의 꼭지를 붙잡고 골목길을 걸었습니다.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고 세찬 바람이 불어도 딸이 우산을 쓰러뜨리지 않고 빗속을 다닐 수 있었던 비결은 아빠가 딸의 우산 꼭지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우산 꼭지를 잡고 있는 아빠의 손을 보지 못하는 어린 딸은 한번씩 나를 올려다 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이것 봐요, 아빠가 안 도와줘도 나 혼자 잘하죠!”“그래, 우리 딸 혼자서도 잘하네!”모처럼 내리는 단비를 반가운 마음으로 한참을 바라보다 17년 전, 어린 딸의 노란 우산 추억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 세 살배기 딸아이는 자라서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고, 지금은 교환학생으로 태평양 건너 한국에 가 있습니다. 아빠 생각에 온실 속의 화초 같기만한 딸아이가 둥지를 떠나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잘 적응할까? 밥은 제때 챙겨 먹을까? 갑자기 아프면 어떡하지? 좋은 친구 사귀어야 할텐데…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아야 할텐데… 걱정섞인 생각들이 자꾸 아빠의 머릿속을 파고 들지만, 이젠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맡길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합니다. 지금 그리고 여기까지 지내온 것은 나 혼자의 힘으로 인생의 우산을 꽉 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배후에서 내 인생의 우산 꼭지를 꼭 붙들어 주셨던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기 때문임을 확실히 알기에 하나님의 두 손에 딸의 삶도 온전히 맡깁니다. 지인이의 참부모이신 그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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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4
    노인과 어른 2022.08.14좋은비전교회
    노인과 어른이젠 고인이 된 이어령 교수님과 100주년 기념교회를 은퇴하신 이재철 목사님이 함께 쓴 [지성과 영성의 만남]이라는 책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노인이 되는 길이 있고 어른이 되는 길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느냐 노인이 되느냐, 그 분깃점은 내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상대를 더 사랑하느냐, 바로 여기에서 갈라집니다. 노인은 나이가 들수록 자기만 압니다. 그런 분들은 나이가 들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 젊었을 때부터 그렇게 살아온 분들입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남을 위하는 마음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20대에는 이해하지 못한 것을 30대에는 이해하고, 30대에 이해하지 못하던 것을 50대, 60대에 이해하고 품게 되는 것입니다. 어른이 곁에 있으면, 그분이 설령 병상에 누워 있어도 주위는 훈훈해집니다. 어른은 모두를 감싸고, 덮어주고, 자기 것으로 채워 줍니다.”글을 읽는 동안,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노인이 되지만, 모두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과, 비록 나이가 어려도 어른일 수 있고, 나이가 많아도 어린 아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글과 포개어져서 마음의 고개를 쉴새없이 끄덕였습니다. 특히 ‘노인과 어른의 분깃점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너비와 폭’이라는 두 지성인의 통찰력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열왕기상 4장 29절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전 솔직히 2, 30대에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와 총명이 몹시 부러웠었습니다. 그러다 불혹(不惑, 40대)의 언덕을 지나 지천명(知天命, 50대)의 고개에 들어서면서부터, 그리고 목회의 연수가 쌓이면 쌓일수록 이제는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주신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이 그 무엇보다 부럽습니다. 세상의 모든 강물을 다 받아들여도 넘치지 않고, 가뭄과 무더위에도 마르지 않고 언제나 일정 수위를 유지하는 바다, 바다처럼 저의 마음도 그러하기를… 한낮의 열기가 대지에 가라앉고 사방이 고요한 여름 밤, 어른이 되길 나의 주님께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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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3
    홀로 서기와 함께 하기 2022.08.07좋은비전교회
    홀로 서기와 함께 하기 장문수 시인의 “마음의 편지”라고 하는 시가 있습니다.   가까이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먼 사람이고,아주멀리 있어도, 마음이 있다면 가까운 사람이니,사람과 사람 사이는 거리가 아니라 마음이래요.마음을다스리는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사람,따스한말을 하는 사람, 위로의 마음을 전하는 사람,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아요. 그런 마음을 갖고 살아요.시가 참 쉽고 간결하면서도, 지난 한 주간 제 마음을 그대로 읽어 주는 듯해서 절로 고개가 끄떡여졌습니다.지난 주일 밤, 아내와 딸이 한국에 계신 연로하신 아버지를 뵙기 위해 먼길을 떠났는데, 결혼한 지24년차를 맞이한 저희 부부가 이번처럼 오래 떨어져 지내는것은 처음입니다. 물론 전도사와 부목사 시절, 각종 수련회와 단기 선교로, 또는 한국에 홀로 계신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한두 주 정도 떨어져 지내봤지만, 5주간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내와 딸을 공항에 내려주고 집으로 혼자 돌아오는 늦은 밤, 인간은 결국 홀로 남는 법을 배워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였습니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고등학교 시절, 저의 책상 위에는 서정윤 시인의시집, [홀로 서기]가 항상 꽂혀 있었습니다.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홀로 선 둘]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이 잔잔한 여운을 남깁니다. 사람은 둘이 함께하기 전에 먼저 홀로 있는시간을 충분히 가져야만 합니다. 홀로 있는 법을 아는 사람만이 둘이 함께 하는 법을 알게 되고, 홀로 서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진정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홀로 서기]를 통해 마지막순간까지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의 곁을 떠나갔지만, 최후의순간까지 자신을 떠나지 않는 분이 계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하나님)께서 나와함께 계시느니라.”(요16:32) 예수님은 홀로 서는 법을 아셨고, 그 홀로 서는 시간을통해서 한순간도 자신을 떠나지 않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24년만에 경험하는낯선 [홀로 서기]… 나의 “혼자 있는 시간”이 주님과“함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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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
    (쉼표 둘.) 내가 그 곳에 가는 한 가지 이유 2022.07.17좋은비전교회
    (쉼표 둘.)내가 그 곳에 가는 한 가지 이유 미국에는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인기 관광 명소들이 참 많습니다. 예를들어, 캘리포니아 주에는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National Park), 유타 주에는 자이언 국립공원(Zion National Park), 아리조나 주에는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Grand Canyon National Park), 몬타나주에는 옐로스톤 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 사우스 다코타에는 배드랜즈 국립공원(BadlandsNational Park)과 러시모어 큰바위 얼굴(Mt. Rushmore National Memorial),포트랜드에는 멀트노마 폭포(Multnomah Falls)), 샌프란시스코에는 금문교(GoldenGate Bridge), 뉴욕에는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 등등.그런데이번에 저희 부부는 이처럼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지만, 금쪽같은 휴가를 보내기 위해 찾은 곳이 있습니다. 집에서 약 1,738마일이나 떨어진 곳, 쉬지 않고 운전을 한다면 자동차로 꼬박 25시간을 달려야 하는 곳, 직항이 없어 비행기를 적어도 한번은 갈아타야 하는 곳,길 양쪽으로 펼쳐진 끝이 안보이는 옥수수밭과 콩밭 대평원 말고는 볼거리가 거의 없는 곳, 아마존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매우 선택적으로 배달되는 곳… 여기는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아이오와(IOWA) 주의 그린넬(Grinnell)이라는 도시, 아니 시골입니다.한국에서 쓰던 ‘깡촌’이란 단어가 딱 어울리는이 시골을 저희 부부가 찾은 이유는 단 한가지, 바로 ‘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린넬 칼리지(Grinnell College) 4학년인 아들이 리서치 프로그램(ResearchProgram)에 참가하면서 이번 여름방학에 캘리포니아로 오지 못했습니다. 한때는미국 50개 주 가운데서 아이오와 주(State of IOWA)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었지만,지금 우리 가족에게 아이오와 주가 캘리포니아 만큼이나 의미있는 주(State)가된 것은 그 곳에 ‘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거기에 있음으로 인해, 저의 생각과 관점, 모든것이 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그곳에 있느냐?’가 그 곳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고,새로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마찬가지로저에게 캘리포니아 주, 특히 라하브라(La Habra) 도시가 의미있는 이유는 날씨가 좋고 환경이 깨끗하고한인 커뮤니티가 잘 형성되어 있어서가 아닙니다. 여기에 ’좋은비전교회와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저에게한없는 의미가 있는 이 곳, 라하브라에 돌아오니 다시금 감사의마음이 그린넬 하늘에서 보았던 뭉게 구름처럼 가슴 가득 피어오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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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
    (쉼표 하나,)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낯선 길을 걸을 때 2022.07.10좋은비전교회
    (쉼표 하나,)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낯선 길을 걸을 때 “쉼표 없는 악보는 명곡(名曲)이라도 연주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명곡이라도 쉼표 없이 계속 연주를 한다면, 예기치 못한 순간에 멈출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첼로나 바이올린을비롯한 현악기 연주가들은 공연이 끝난 후에는 현을 반드시 풀어 두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계속악기의 현을 죄어 둔 상태로 두면, 얼마 못가서 악기가 휘게 되고, 결국은더 이상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도 삶의 줄(현)을 팽팽하게 매어둘 때와 느슨하게 풀어둘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꼭 필요해 보입니다. 고대하던 여름 휴가 첫 주간을 보낸 곳은 오레건(Oregon)주의 포틀랜드(Portland)입니다. 포틀랜드가 자랑하는 명소들을 찾아다니던 중, 저의 마음에 오랫동안소장될 보물 같은 곳을 발견했는데, 높이 620피트(약 189미터)의 멀트노마폭포(Multnomah Falls)입니다. 거대한물줄기가 낙하하면서 뿜어내는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폭포 소리, 엄청난 폭포수가 바위에 부딪치면서 흩날리는시원한 물보라를 온 몸으로 받는 순간,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감격이 차 올랐습니다. 다음날 아침, 전날의감동을 더 확실하게 느끼고 싶은 저는 다른 스케줄을 조정하고, 여섯 개의 폭포를 다 도는 산행 완주를위해 혼자 다시 찾아갔습니다. 주먹밥과 간식, 물병 등 만반의준비를 하고 숙소를 나서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콜럼비아 강(Columbia River)을 따라 멀트노마 폭포로 가는 하이웨이에선 억수같은 장대비가 쏟아졌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장장 4시간의 멀트노마 폭포 산행은 또 한번 저의기억 속에 영원히 잊지 못할 주님과의 추억을 쌓는 길이 되었습니다. 비내린 직후라 아주 미끄러워진 트레일(trail), 내가 내딛는 발만 보일 정도로 눈앞을 가린 짙은 안개와 고개를 들면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빽빽한수풀에 보이지 않는 하늘, 그 수풀에 맺힌 빗방울로 인해 어느새 흠뻑 젖은 몸… 처음엔 이 모든 환경이 쉽진 않았지만, 이내 익숙해졌고 참을 만했습니다. 그러나 꽤 오랫동안 저를 사로잡았던 무서움은 산행을 너무 일찍 시작한 탓에 산 능선을 걸어가는 세 시간 동안사람 구경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한번도 가 보지 않은 낯선 산길을 걸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겁도 없이 혼자 왜 이 낯선 길에도전했을까? 그냥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갈까?’라는 생각을수십 번도 했지만, 수많은 생각들의 유혹을 물리치고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PLEASE STAY ON PAVED TRAIL”이라는 팻말 덕분이었습니다.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는 우리 역시 미끄러운 길, 짙은 안개와 어둠, 사방이 빽빽한 밀림, 또 우리 곁에 동행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황을 만날지라도 [주어진길을 벗어나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계속 걷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이를 것이라는 배움을 얻는 산행이었습니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을 걸을 때, 내가 지금 가는 이 길에 대한 확신이 희미해지고 회의감이 뭉게뭉게 피어오를 때마다, 이제 저는 “PLEASE STAY ON PAVED TRAIL” 이말을 기억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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