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비'와 '딸'

'비'와 '딸'

September 11, 2022

‘비’와 ‘딸’

지난 금요일 저녁, 연일 100도를 넘나드는 폭염으로 지칠대로 지친 메마른 대지 위에 내린 비는 마치 추수하는 날의 얼음 냉수처럼 하나님의 기막힌 선물이었습니다.

그렇게 남가주에 귀한 비가 오는 날이면, 뭉게구름처럼 피어나는 딸과의 소중한 추억이 있습니다.

가족이 미국으로 오기 전, 둘째 지인이가 만 세 살때였습니다. 아빠를 닮아 비오는 날을 유난히 좋아했던 어린 딸은 비가 솔솔 내리던 어느 월요일 아침, 아빠의 손을 잡아당기면서 밖으로 나가자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딸을 노란색 비옷과 노란색 장화로 무장시키고, 세 살배기에겐 깊은 골짝 같은 빌라의 계단을 한참 걸어내려와 처마밑에서 노란색 우산을 펼치는 순간, 아빠의 눈에 지인이는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노란 병아리가 되었습니다.

골목길을 내려가는데, 부슬부슬 내리던 빗방울이 어느새 바람을 동반한 굵은 빗줄기로 변해버려 세 살배기의 힘으로는 우산을 지탱할 수가 없었기에, 얼른 아빠가 딸아이의 우산을 잡아주려 했지만, 이 꼬마는 기어이 혼자서 자기 우산을 들겠다고 우기는 것이었습니다.

“아빠가 안 도와줘도 나 혼자 할 수 있어요!”

급기야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 할 수 없이 한 손으로는 내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딸아이 몰래 노란 우산의 꼭지를 붙잡고 골목길을 걸었습니다.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고 세찬 바람이 불어도 딸이 우산을 쓰러뜨리지 않고 빗속을 다닐 수 있었던 비결은 아빠가 딸의 우산 꼭지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우산 꼭지를 잡고 있는 아빠의 손을 보지 못하는 어린 딸은 한번씩 나를 올려다 보며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이것 봐요, 아빠가 안 도와줘도 나 혼자 잘하죠!”

“그래, 우리 딸 혼자서도 잘하네!”

모처럼 내리는 단비를 반가운 마음으로 한참을 바라보다 17년 전, 어린 딸의 노란 우산 추억이 떠올라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 세 살배기 딸아이는 자라서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고, 지금은 교환학생으로 태평양 건너 한국에 가 있습니다.

아빠 생각에 온실 속의 화초 같기만한 딸아이가 둥지를 떠나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잘 적응할까? 밥은 제때 챙겨 먹을까? 갑자기 아프면 어떡하지? 좋은 친구 사귀어야 할텐데…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아야 할텐데… 걱정섞인 생각들이 자꾸 아빠의 머릿속을 파고 들지만, 이젠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맡길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합니다.

지금 그리고 여기까지 지내온 것은 나 혼자의 힘으로 인생의 우산을 꽉 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배후에서 내 인생의 우산 꼭지를 꼭 붙들어 주셨던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기 때문임을 확실히 알기에 하나님의 두 손에 딸의 삶도 온전히 맡깁니다.

지인이의 참부모이신 그분께…

최준우 목사는 현재 남가주에 위치한 좋은 비전교회 목회를 담임하고 있다.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예배 공동체, 예수님의 제자로 양육하는 제자훈련 공동체, 다음 세대를 성경적 리더로 준비하는 차세대 공동체, 코이노니아의 기쁨이 넘치는 사랑공동체, 복음으로 세상과 이웃을 섬기는 선교 공동체를 꿈꾸며 오늘도 그러한 교회를 세우는데 헌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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